‘아묻따’ 10만원 투척… 제도 밖 고립된 빈민 ‘신출귀몰’ 구제 [S스토리-민간 자선기금 ‘홍길동은행’]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7-26 23:00:00

‘공과금 다 밀려…’ ‘병원비조차 없어…’
재산·나이 안 따지고 사연만 기준
10만원씩 수백명 긴급생계비 지급
2024년 4월 시작 8차까지 2300명 도와
韓 상대적빈곤율 14.9% OECD 3위
가난으로 범죄까지 치닫는 상황 참담
100% 민간후원 운영… “제도화 기대”

“10만원이 제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홍길동은행 긴급생계비 지원자 A씨)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6개 주요국 중 세 번째로 높다.
국민 7명 중 1명꼴로 기준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홍길동은행’이라는 이름의 민간기금이 얼굴 모를 사연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홍길동은행은 지난해 4월 1차 사업을 시작해 지난달 8차 사업을 마무리했다.
한 회차당 평균 300명에게 10만원씩 긴급생계비를 지원한다.
지금까지 2300여명이 도움을 받았고 총 지원금액은 2억3000만원을 넘는다.
나이나 재산, 학력 제한은 전혀 없고 오직 사연만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선별한다.

지원자 선별은 홍길동은행 운영위원장인 김용춘 감정평가사가 주로 담당한다.

한 차수에 보통 1000∼3000개의 사연이 들어오는데 이 중 300명 정도를 추려 지원한다.
자금은 100% 후원으로 충당되는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의 유튜브 활동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다.
김 감평사는 “지원받는 분들이 다 형편이 어려워 절박한 분들이라 후기가 많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간간이 개인 문자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 온다”고 말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사연이 특히 절절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키우는 한부모가정은 “공과금 두 달치를 못 내고 있고 아이 학습교재도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삼남매를 키우는 한 여성은 실직 후 막내의 고등학교 셔틀버스비를 내지 못해 지원을 신청했다.
뇌성마비와 지적장애를 가진 26세 딸을 하루 온 종일 돌보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치료비를 쓰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려니 라면 등 값싼 인스턴트를 주로 먹이게 된다”며 “단 몇 끼라도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고 호소했다.

부상으로 일을 못 하게 된 사람들의 사연도 이어졌다.
일용직으로 생활하던 한 사연자는 손가락 부상으로 작년부터 일을 거의 못 하다가 올해 겨우 일을 시작했지만 경기 악화로 일자리가 줄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고등학생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험하고 궂은일을 하시다 몸이 망가지셨는데 병원 갈 형편이 안 된다”며 자퇴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허리 협착으로 일을 못 하게 된 대리기사는 의료보험료와 공과금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홍길동은행의 지원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1차 사업 때 3244명이 신청해 240명이 선정됐지만, 지난달 8차 사업에서는 1074명이 신청해 363명이 지원받았다.
4차부터는 지나치게 많은 지원자로 인한 탈락자 수를 줄이기 위해 조기마감 제도를 도입했고, 8차 이후부터는 지원의 폭을 넓히고 적시성을 높이기 위해 상시지원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홍길동은행은 4년 전부터 운영해 온 ‘청년 꿈수저 장학금’에서 시작됐다.

김 감평사는 “안 소장이 방송에 나가면서 번호가 공개되니까 대학생 말고도 도와 달라는 연락이 너무 많이 왔다”며 “절절한 사연이 너무 많아서 이분들을 구제해 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5만∼10만원 소액 범죄가 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면서 긴급생계비 지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상대적 빈곤 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22년 기준 14.9%라는 수치는 OECD 16개 주요국 평균인 11.3%보다 3.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미국(18.1%), 칠레(16.3%)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상대적 빈곤율은 사회 전체 구성원의 중간소득(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중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국민을 소득 순서대로 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소득이 중위소득인데, 정부는 이를 보정해 만든 ‘기준 중위소득’을 각종 복지 지원 대상자를 선별하는 기준으로 활용한다.
절대적 빈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 수준을 의미한다면, 상대적 빈곤은 그 사회 대다수가 누리는 평균적 생활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을 가리킨다.
2025년 현재 기준 중위소득의 50% 수준은 1인 가구 월 119만6000원, 2인 가구 196만6000원, 3인 가구 251만3000원, 4인 가구 304만9000원이다.

이처럼 상대적 빈곤이 심각한 상황에서 홍길동은행 관계자들은 민간 차원의 지원이 제도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 감평사는 “1년 넘게 운영하면서 제도화를 기대하고 있다”며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초에 시작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예림·소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