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반도체에 약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촉진하고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품목 가운데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제품으로, 실제 적용될 관세율에 따라 수출 전선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애플의 대미 시설투자 계획 발표 행사에서 "(미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에 대략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약속했거나 건설 중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관세가 없다"며 "이건 아주 큰 발표(big statement)"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내 생산과 투자를 약속한 기업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에서 생산을 진행하거나 약속한 기업에는 고용·생산 규모와 관계없이 관세를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어 "어떤 이유로든 건설 중이라 해놓고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누적 금액을 청구할 것"이라며 "그 돈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관세의 구체적 부과 시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CNBC 인터뷰에서 "다음 주쯤(next week or so)" 반도체와 의약품 등 추가 품목별 관세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르면 내주 관련 발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반도체가 자동차·전자기기·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의 기반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주도권을 미국 쪽으로 가져오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도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중심 정책을 대신해, 경제적 제재를 활용한 강압적 방식으로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려는 접근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미국 내 자국 생산 확대 기조와 맞물려 있으며, 애플이 미국 내 제조에 10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애플은 향후 4년간 미국에 6000억 달러(약 832조원)를 투자할 것"이라며 "이는 당초 계획보다 1000억 달러 많은 규모"라고 밝혔다.
반도체는 한국의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주력 품목으로, 이번 조치는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 달러(약 14조7000억원)였다.
명목 기준 대미 수출 비중은 7.5%로 중국(32.8%), 홍콩(18.4%), 대만(15.2%), 베트남(12.7%)보다 낮다.
다만 내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대만 등 제3국을 거쳐 조립·가공 후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실제 미국 시장 의존도는 이보다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수입 반도체에 10% 관세가 적용될 반도체 수출이 0.2%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30일 타결된 한미 무역 합의에서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밝혔지만, 실제 적용 세율에 따라 수출에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애플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삼성과 협력해 혁신적인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애플이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구축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삼성과의 기술 협업을 통해 미국 내 첨단 제조 역량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관세만으로는 미국 내 제조를 늘리기 어렵다며, 공정·비용 부담과 생산지 해외 이전 같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율 관세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산업 정책·인프라 투자와 함께 핵심 부품을 겨냥한 표적형 관세가 더 실효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도에 대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이유로 25%의 '2차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기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러시아산 에너지 대규모 수입국인 중국에 2차 관세를 부과할지에 대해 질문받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