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통령”… 러 명목상 ‘2인자’ 겨냥한 트럼프의 조롱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8-02 13:08:07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과거 푸틴의 ‘대타’로 4년간 대통령 지내
트럼프 “아직도 대통령인 줄 착각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이어 ‘2인자’로 통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맹비난했다.
연일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멈추라고 다그치는 트럼프를 겨냥해 메드베데프가 핵무기 위협 카드까지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미 해군에 명령해 핵잠수함 두 척을 러시아와 가까운 해역에 배치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이 조치가 “메드베데프의 매우 도발적인(provocative) 발언” 때문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메드베데프는 전날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옛 소련의 핵무기 공격 시스템인 일명 ‘데드 핸드’(Dead Hand)를 꺼내들었다.
데드 핸드는 적군의 공격으로 러시아 지도부가 무너지는 경우 적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메드베데프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전설적인 데드 핸드가 얼마나 위험한지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차하면 미국과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메드베데프를 향해 트럼프는 “자신이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착각하는 실패한 전직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조롱을 날렸다.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핵심 측근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푸틴 정부의 부총리로 일했다.
2000년 4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해 8년간 재직한 푸틴은 러시아 헌법상 3연임 금지 조항에 걸려 2008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이에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대통령 후보로 내보냈다.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있던 2008∼2012년 푸틴은 그 밑에서 총리를 지냈다.
이 기간 메드베데프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푸틴이 마치 ‘상왕’처럼 모든 의사 결정권을 행사했다.
2012년 메드베데프에게서 정권을 회수한 푸틴은 이후 헌법을 고쳐 현재까지 권좌를 지키고 있다.

2008년 10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크레믈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업무 협의를 하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푸틴의 ‘대타’로 4년간 대통령을 지낸 메드베데프를 향해 “자신이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착각하는 실패한 전직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러시아 대통령실 제공

트럼프가 메드베데프를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른 것은 말이 대통령이지 실은 푸틴의 부하였을 뿐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2012년 푸틴 재집권 이후 메드베데프는 총리를 거쳐 2020년부터는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명목상 푸틴에 이은 2인자이나 권력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외신의 분석이다.

한편 트럼프의 명령으로 러시아 근해에 배치된 ‘핵잠수함’이 원자력을 동력으로 삼는 통상의 핵추진 잠수함인지, 아니면 진짜 핵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실전에 배치된 핵탄두 수가 미국은 1770기, 러시아는 1718기라고 한다.
1962년 10월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소련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군이 카리브해 일대에서 10일 넘게 대치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무기 출현 후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사례로 평가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