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와 거리 둔 폴란드 대통령 당선인 “과거사 해결 먼저”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8-01 07:08:50

1940년대 우크라 반군에 의한 폴란드인 학살 언급
젤렌스키는 ‘묵묵부답’… 관계 악화 가능성 제기돼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월 대선 승리 후 처음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폴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왔으나, ‘폴란드 우선주의’를 내걸고 당선된 나브로츠키가 오는 8월6일 정식으로 취임하면 두 나라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나브로츠키는 통화에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의 역사적 악연을 거론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 당선인. 사진은 지난 6월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 기뻐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7월31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나브로츠키의 대변인은 이날 두 사람의 통화 직후 “당선인께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중요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과거와는 다른 접근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반군(UPA)에 의한 폴란드인 집단 학살을 뜻한다.

폴란드가 나치 독일의 점령 통치를 받던 1943년부터 폴란드 남동부 볼히니아 지역에서 UPA의 폴란드 민간인 공격이 시작됐다.
UPA는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패해 나라를 잃은 것을 기회로 삼아 볼히니아에서 폴란드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독자적 정권을 세우고 싶어했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소련군이 볼히니아에 진주할 때까지 UPA가 자행한 인종 청소로 약 10만명의 폴란드인이 목숨을 잃었다.

2차대전 종전 후 소련이 동유럽 국경선을 재조정하며 볼히니아를 폴란드에서 떼어내 소련을 구성하던 공화국들 가운데 하나인 우크라이나로 이관하며 볼린주(州)로 불리게 됐다.
1991년 소련 해체로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면서 현재도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아 있다.

나브로츠키는 폴란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역사학자 출신이다.
그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 지원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2차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폴란드인 학살 등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아울러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려는 우크라이나의 열망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대선 기간 나브로츠키는 “폴란드 안보는 미국에 달려 있다”며 “미국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공약했다.
5월에는 대선 후보 신분으로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
나브로츠키는 “트럼프 대통령과 폴란드·미국 양국 관계의 미래를 논의했으며, 그는 나의 승리를 기원했다”고 밝혀 구설에 올랐다.

나브로츠키와의 통화 후 젤렌스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폴란드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밝혔다.
다만 볼히니아 학살 등 과거사 문제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