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美에 2000조 선물 풀고 '관세 15%' 합의…韓 발등에 불(종합)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7-28 06:32:19

미국이 자동차를 포함해 유럽연합(EU)산 수입품 대부분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EU는 그 대가로 총 1조3500억달러(약 1870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와 대미 신규 투자를 약속했다.
8월1일 상호관세 유예 조치 만료를 앞두고 일본에 이어 EU까지 미국과 무역 합의를 전격 타결하면서,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최종 관세 협상을 벌여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EU에 30%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회담에서 이를 절반인 15%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EU는 현재 기존 평균 4.8% 관세에 지난 4월부터 미국이 전 세계에 부과한 10% 기본 관세를 더해 총 15%를 적용받고 있어, 사실상 현상 유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기본적으로 마무리됐다"며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합의 중 가장 큰 규모"라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이번 무역 합의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관세율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EU는 15% 관세를 부과받는 조건으로 2조달러에 이르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고, 미국에 60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대규모 군사 장비 구매에도 합의했다.

다만 세부 사항에서는 일부 이견도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과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은 15%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모든 품목에 15%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50%의 품목 관세를 부과 중인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일정 수출 물량에는 기존 50%에서 15%로 관세가 인하되는 쿼터제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또 향후 미국이 의약품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EU는 15%로 제한된다고 했다.

이번에 미국이 EU에 적용한 15% 관세율은 앞서 일본과 합의한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쌀·자동차 시장 일부 개방을 조건으로 미국이 책정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고, 자동차 품목별 관세 역시 동일하게 15%로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
EU 역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지난 22일 미·일 무역 합의 이후 관세 15% 수용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고, 이후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15%는 현재까지 미국이 무역적자국에 적용한 관세율로는 사실상 최저 수준이다.
관세 15%가 향후 다른 교역국과의 협상 기준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전 EU가 15%보다 더 나은 조건을 얻을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것이 더 낮은 관세를 의미한다면 그건 안 된다"고 일축했다.

현재 미국이 기본 관세 10%만 적용하는 국가는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영국이 유일하다.

미국이 일본, EU와 잇달아 무역 합의를 마무리하면서 아직 협상이 끝나지 않은 한국은 비상 상황에 놓였다.
현재 한국의 상호관세율은 25%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일본·EU와 같은 15% 수준으로의 인하가 필수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관세 15%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마지노선인 셈이다.

다만 미국이 일본, EU에 이어 28~29일에는 중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있어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의 협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한미 2+2 통상 협의'는 회의를 이틀 앞두고 미국 측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관세 부과 시한인 8월 1일을 하루 앞둔 오는 31일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첫 상견례를 하고 최종 담판에 나서게 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관세 유예 조치 연장은 없다고 밝힌 만큼 관세 부과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하루다.
현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현지에서 사전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국과 무역 합의를 타결하려면 구 부총리와 베선트 장관이 하루 만에 최종 조율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른 3~4개국과도 거래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 한국 등 주요 교역국과 협상이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정부는 협상 타결을 위해 그동안 '레드라인'으로 설정해 온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과 대미 투자 확대 카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 측에 한미 조선업 협력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러트닉 장관은 향후 2주 내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 발표도 예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과 무역 협상을 마무리 짓더라도,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압박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