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車 관세 인하 끌어내”… 관세 발효 전 합의 타결에 안도 [美·日 관세 타결]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7-23 19:03:51

합의 내용 살펴보니
“대미 무역 흑자국 중 최저 관세율
수량 제한 없이 車 관세 인하 실현”
첫 10만대에만 적용 영국과 ‘대조’
美 車업계선 “나쁜 합의” 반발 나와
이시바 “농업 희생 일절 없어” 강조
기존 수입량서 미국산 쌀 늘릴 듯
철강·알루미늄은 빠져 ‘50%’ 유지

미국의 관세 조치를 ‘국난’으로 규정하고 총력전을 벌여온 일본은 22일(현지시간)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관세 인하를 끌어내 자국 핵심 산업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된 데에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
일본 산업계도 8월1일 상호관세 발효 시한 전 무역 합의 타결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상호관세·자동차관세율 15%로 하향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미국이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로 조정됐다.
이는 기존에 예고한 25%에서 10%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미국은 그간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한 10%를 뺀 추가분에 대해서만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원칙을 관철한 셈이다.

상호관세율 15%는 미국이 지금껏 무역 합의를 본 5개국 가운데 대미 교역 적자국인 영국(10%)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치다.
미국은 베트남과 20%, 인도네시아·필리핀과는 19%에 합의했다.
이시바 총리는 23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미 무역 흑자국 중에서는 지금까지 가장 낮은 숫자”라고 강조했다.

자동차와 관련 부품에 부과되는 품목별 관세는 트럼프 행정부가 4월부터 부과한 25%의 절반인 12.5%로 하향 조정됐다.
여기에 기존 세율인 2.5%를 합쳐 15%가 됐다.
미국은 영국산 수입차의 첫 10만대에만 10% 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과 달리 일본산 수입차에는 수량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시바 총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량 제한이 없는 자동차 관세 인하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전일 대비 3.51% 올랐다.
특히 도요타자동차가 14.34% 상승하는 등 자동차 관련 주가가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무역 합의로 일본이 미국산 자동차·트럭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 측 관세 담당 장관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전한 미국제 승용차를 추가 시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지만 국민 안전 확보가 당연히 전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줄곧 요구해온 자동차 관세 등의 포괄적 철회는 이루지 못했으나, 업계는 일단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다.
한 자동차업체 고위 관계자는 NHK방송에 “세율이 높은 것은 변함이 없어 어려운 상황이지만 불확실성이 사라져 사업을 하기엔 편해졌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15%면 비용 절감 등으로 어떻게든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산업계와 자동차 노동자에게 나쁜 합의”라는 반발이 나왔다.

호외 배포 23일 일본 도쿄에서 요미우리신문사 직원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 타결 소식을 담은 신문 호외판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日 “농업 희생은 없어”

관세 인하를 위해 일본이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반대급부는 5500억달러(약 7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련 일자리 창출, 쌀 등 일부 농산물 시장 개방, 알래스카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일본 대미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민당 내 이른바 ‘농림족’의 반발이 예상되는 농산물 수입 확대와 관련, 이시바 총리는 “이번 합의에 농업을 희생시키는 것은 일절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으로 약 77만t의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는데, 이 틀 안에서 미국산 쌀 수입량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농민 분들은 ‘수입쌀이 더 들어오는 것 아닌가’ 불안해하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이번 합의에 철강·알루미늄 관세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기존 50%가 그대로 유지된다.
이시바 총리는 다만 “반도체와 의약품 등 경제 안전보장 측면에서 중요한 물자는 만약 향후 관세가 부과된다면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나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확약을 받았다”며 “반도체, 의약품, 철강, 조선, 중요 광물, 항공, 에너지, 자동차, 인공지능(AI)·양자 등 경제 안보상 중요 분야에서 양국이 함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강인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아직 합의문에 서명은 하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가 “국익을 걸고 서로가 한계까지 협상을 해왔다”며 “필요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 또는 대면 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향후 정상 간 서명 가능성도 점쳐진다.

8차 방미 끝에 협상 타결을 이룬 아카자와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엑스(X)에 “임무를 완료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만나는 장면이 담긴 사진도 함께 게시했다.
양국 정상 간 신뢰가 협상 타결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