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은 탄탄하고, 물가는 조용하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이중 책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관세인상에도 불구하고 우려와 달리 물가는 크게 오르지 않고 있어 금리를 유지할 수도, 그렇다고 견조한 고용지표를 고려하면 금리를 당장 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쳐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금리 인하 지연에 대한 책임을 파월 의장에게 돌리고 있는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금리 향방을 엿볼 수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로 향하고 있다.
로버트 헤철 전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3일 비즈니스인사이더에 "파월 의장은 유례없는 딜레마(epic and delicate conundrum)에 처해있다"고 표현했다.
지금처럼 물가는 안 오르는데 금리 인하 압력은 거세고 동시에 고용은 탄탄한, 즉 정책 결정에 정답이 없는 상황을 묘사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Fed가 금리를 낮추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장단을 맞추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일자리다.
게다가 최근처럼 인플레이션이 튀지 않는 상황에선 '고용이 얼마나 약화하고 있는가'를 더 주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3일 미국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4만7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1만명)를 크게 웃돌았다.
실업률 역시 5월 4.2%에서 6월 4.1%로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향해 거듭 '투 레이트(Too Late)'라고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론을 고수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촉에도 파월 의장은 "우리는 인플레이션과 고용 지표를 보고 판단한다"며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정책 대응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급증하는 재정적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내리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위한 Fed의 이중책무에 충실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를 주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세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이 트럼프 관세 발표 전 재고 확보를 위해 수입을 앞당겼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 물가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들이 관세 전 수입 물량을 미리 확보하면서, 정작 관세가 발효됐지만, 물가 충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물가 안정세는 백악관의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다.
폴리티코는 "고용 호조가 정치적 공격의 정당화 근거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지표의 호조에 안심해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시차를 두고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 Fed는 다시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금리의 급격한 반전은 경기 냉각과 고용 시장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6월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대부분 Fed 위원들은 관세가 지속적 인플레 위험이 있다며 이에 따라 금리 인하 시점을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금리 방향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시장은 16일로 예정된 CPI를 주시하고 있다.
파월 의장이 강조해온 "데이터 기반의 금리 결정"이란 원칙에 따라 이번 CPI 결과가 향후 정책 방향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승 폭이 확대된다면 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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