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떵떵거려도 어쩔 수 없었는데'…비자금 몰수의 길, 법으로 튼다더팩트 기사제공: 2025-08-11 15:36:01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 비자금 환수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국회=이성락 기자] 지난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을 통해 '노태우 비자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실체 규명과 비자금 환수에 대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불법 비자금 환수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지하고,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국회 토론회가 11일 열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구갑)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 비자금 환수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앞서 박균택 의원은 지난달 반인권적 국가범죄로 인한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내용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토론회에서는 '노태우 비자금' 환수를 위한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더팩트 DB

◆ "'노태우 비자금" 논란 커져도 지켜볼 수밖에"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노소영 관장의 이름이 수차례 거론됐다. 지난 수십 년간 논의된 비자금 환수제 도입론에 재차 불을 지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노소영 관장은 지난해 5월 말 이혼 소송에서 '선경 300억'이라고 적힌 모친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제출하며 비자금의 존재를 스스로 알렸고, '이 돈이 기업 성장의 종잣돈이 됐기 때문에 자신의 기여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지급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당시 비자금 논란은 국정감사장에 등장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여러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70% 이상이 찬성표를 던질 정도로 '불법 비자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다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비자금의 적극적 환수가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이 먼저 강조됐다. 현행 형법상 범죄수익을 몰수하려면 공소사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범죄임이 인정돼야 한다.

박균택 의원은 "노소영 관장이 비자금 실체가 담긴 메모를 법정에 제출했음에도 공소 제기가 불가해 범죄수익을 수사·환수할 수 없다"며 "또 범죄수익이 상속·증여·유류분 반환 등을 통해 제3자에게 귀속된 경우 검사가 '해당자가 범죄수익임을 알았는지' 여부를 입증해야만 추징이 가능해 실질적인 환수에 어려움이 큰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재평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형법은 몰수·추징을 유죄판결에 부가되는 '부가형'으로 규정하고 있어 기소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며 "공소시효 도과, 범죄자 사망, 피고인 특정 불가 등의 경우 범죄수익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범죄자 후손이 부·권력 쌓아…독립몰수제 도입해야"

이번 토론회의 핵심은 '노태우 비자금' 등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 범죄수익의 상속을 막음으로써 사회 정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독립몰수제'가 제시됐다. 독립몰수제는 형사재판이 불가능하거나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유죄판결 없이 예외적·보충적 수단으로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박재평 교수는 "유엔부패방지협약,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등은 유죄판결 없이도 자산 환수를 가능하게 하는 독립몰수제도의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도 유죄판결이 없는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중"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실질적 정의 회복의 요구에 발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강성필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비자금의 실체를 공개한 노소영 관장을 지적하며 독립몰수제 도입 등을 담은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강성필 부대변인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현실이 분노스럽다. 경제적 이익조차도 환수할 수 없는 불공정성과 법적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선 반드시 독립몰수법이 필요하다"며 "국회는 불법 비자금이 은닉되거나 세습되는 일이 없도록 국민적 요구에 응답해 즉각 입법에 착수해야 한다. 과거 부정하게 조성된 재산을 환수해 정의를 회복하는 일은 공정하고 통합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며, 그 첫걸음이 바로 독립몰수법 제정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불법 비자금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손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더팩트 DB

◆ "특별법으로 노소영 등 후손도 철저히 조사해야"

이 외에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한정한 몰수제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성환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는 "국가폭력범죄는 당연하고, 민생침해범죄에 대해서도 몰수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해킹, 보이스피싱, 로맨스캠, 딥페이크, 대규모 금융 사기 등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협하는 많은 민생침해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범죄자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범죄자들이 해외에 체류하는 등 소재 불명이라는 이유로 기소 중지가 돼 범죄수익 환수를 통한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허연식 5·18기념재단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비자금 부정축재재산 환수위 위원은 "조금 더 법을 확대해 특별법 형태가 되길 바란다. 이는 이순자 여사, 노소영 관장 등 비자금을 제공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또 이들이 어떻게 돈을 은닉했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함"이라며 "현재까지 사실로 확인된 비자금 조성과 축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독립몰수제와 관련해 입법적 정비·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혜미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반인권적 국가폭력범죄라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독립몰수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정당성을 당연히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헌성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 빈틈없이 정교하고 세심한 입법이 요구된다"며 "소급입법 문제도 존재하는 만큼, 독립몰수제의 성격과 요건, 절차, 효과 등을 더욱 엄격히 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