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환자 치료 8주 이상 받을시 '보험사 허락' 받아야
환자 '치료 받을 권리' 침해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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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을 8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시행 규칙' 개정안과 관련해 의료계를 비롯해 소비자단체들도 반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을 8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의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시행 규칙' 개정안과 관련해 금융소비자단체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피해자와 이해가 상충되는 가해자 측 보험사라는 점에서 피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앞서 의료계와 한의학계도 반대 의사를 보인 가운데, 보험업계는 과잉진료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경제민주화시민연대, 금융소비자연맹, 금융정의연대, 민생경제연구소 등 4개 금융시민단체는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공동성명 발표했다.
개정안은 상해등급 12~14급에 해당하는 교통사고 경상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으려면 보험사에 상해 정도와 경과 자료를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보험사는 8주 이후 치료비에 대해 지급여부를 심사하고, 결과에 따라 지급을 중단할 수도 있게 된다. 환자가 이의제기를 하면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에서 분쟁 해결을 주선한다.
금융시민단체는 이 같은 개정안이 전문성이 결여된 판단이 나올 수 있으며,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의료인의 진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할 치료 지속 여부를, 일개 민간 보험사에게 위임하는 것은 독소조항"이라며 "의학적 전문성과 의료 경험 등을 요구하는 치료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민간 보험사가 비대면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피해자와 이해가 상충하는 '가해자 측 보험사'라는 점"이라며 "민간 보험사의 최우선 목적은 비용 절감이지, 피해자의 완전한 원상회복이 아니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민간 보험사는 '치료 필요성 불인정' 결론을 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피해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사실상 제한한다는 점 또한 큰 문제"라면서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행정적 부담은 환자에게 진료 연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한의사협회와 정형외과의사회 등 의료계에서도 반발이 심하다. 한의협중앙회는 지난달 10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자배법 입법예고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의협은 개정안이 무효화 될때까지 반대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의협은 "교통사고 환자와 의학적 판단을 하는 의료인을 제외하고 환자의 치료 여부를 가해자측 보험사가 결정한다는 것은 법과 의료 기본 목적을 훼손하는 반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형외과의사회도 지난달 1일 성명을 내고 "피해자 치료는 뒷전으로 미루고 자동차보험회사의 이익만 우선시 하려는 독단적 시도"라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환자가 제출한 자료를 보험사가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진료비 지급 여부를 자체 판단하는 '셀프 심사'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업계는 과잉진료 현실이 매우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교통사고 치료 중 경상환자의 장기치료(8주 초과)가 전체 건수의 20%에 달하고, 이들이 총 진료비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6년간 연평균 경미환자 치료비 증가율은 약 9%로, 이는 중상(중상해) 환자의 연 3.5% 증가율보다 2.5배 이상 빠른 증가세다. 이 중 2023년 기준 약 1조3000억원이 경미환자의 치료비로 지출됐고, 여기에 '향후치료비' 명목으로 별도 1조4000억원이 추가 지급됐다. 이러한 치료비 증가가 보험료 인상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대형 6개사(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의 누적 차보험 손해율 평균은 82.7%로 전년 동기(79.8%)에 비해 2.9%포인트 올랐다. 일반적으로 차보험 적정손해율을 80%로 책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적자가 나타나는 셈이다.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의 기본원칙은 발생한 손해만큼 보상한다는 것인데, 경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손해의 크기가 증상에 비해 확대된다면 '과잉 진료'가 되는 것인데, 이는 보험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과잉진료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면 결국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져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한 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이 사실상 소비자 반발에 의해 중단한 사례를 비춰볼 때, 이번 개정안에 대한 소비자 반대 목소리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은 차보험으로 차량을 고칠 때 정식 부품이 아닌 '품질인증부품'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는 표준약관 개정을 추진했으나, 소비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품질인증부품 사용을 유도하되, 기존처럼 순정부품을 활용해 차량 수리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한발 물러섰다.
법조계 관계자는 "의학계를 넘어서서 소비자들조차도 강력히 반발하는 만큼, 정부나 국회가 의료계·소비자 의견을 재검토한 후 조정하거나 보완 조치를 포함해 재추진할 여지가 있다"면서 "아직 입법예고 단계이기 때문에, 제도 도입 전 충분한 공론화와 개선 과정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