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동차 관세 25%→15%…현대차·기아 '한숨 돌려'
조선, 1500억달러 협력 펀드로 전략산업 '격상'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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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한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미국 워싱턴 D.C. 미국무역대표부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을 갖고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산업부 |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미국과 한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은 당초 예고했던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약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 시장 개방 등을 약속했다. 이번 합의는 8월 1일부터 발효되며 자동차와 조선 등 주요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에서 "오늘 새벽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라며 "미국이 8월 1일부터 부과하기로 예고한 상호관세 25%는 15%로 낮아진다"고 밝혔다. 이어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 역시 15%로 낮아지고, 추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도 다른 나라와 대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협상을 위해 정부는 부총리, 산업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협상단을 미국에 파견했고, 재계에서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조선·반도체·자동차 분야 협상 지원을 위해 각각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자동차 업계는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가 기존 0%에서 15%로 인상된 것은 뼈아프지만, 당초 우려했던 25% '관세 폭탄'은 피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25%가 그대로 적용됐다면 미국 수출 차량 1대당 약 860만원의 비용 상승이 불가피해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 부담을 2분기 실적에 선반영하며 수익성이 큰 폭으로 악화됐다. 현대차는 약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 규모의 관세 관련 손실을 각각 반영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차는 전년 동기 대비 15.8% 줄어든 3조6016억원, 기아는 24.1% 감소한 2조76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지난해 약 170만대를 판매하며 2년 연속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관세가 25%로 인상됐다면 도요타나 BMW 대비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양사는 미국 내 앨라배마·조지아 등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미국 판매량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한국 및 제3국 공장에서 만들고 있어 관세 적용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이에 향후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부품 조달 효율화 등을 통해 수익성 방어에 나설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미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주신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헌신적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현대차·기아는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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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계는 이번 협상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대표 산업으로 부상했다. 정부는 관세 합의 발표 직후 "한국과 미국이 조선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전용 펀드 조성 계획을 밝혔다. / 뉴시스 |
한국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미국산 자동차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포드, GM, 테슬라 등이 인증 절차나 안전 기준 등 비관세 규제 완화를 발판 삼아 한국 시장 진입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긍정적 변화일 수 있지만 국내 완성차 업계에는 또 다른 경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관세와 무관하게 미국차는 크기, 연비, 주차 여건 등 국내 실정에 맞지 않아 판매가 부진했던 만큼 이번 개방 조치가 미국차 판매 확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 인상폭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교수는 "일본은 기존 2.5%에서 15%로, 한국은 0%에서 15%로 인상된 만큼 상승폭 자체는 한국이 더 크다"며 "형식상 동일한 조건처럼 보여도 한국이 실질적으로 더 불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차·기아는 도요타보다 현지 생산 비중이 높지만 GM, 포드 같은 미국 브랜드에 비하면 여전히 불리하다"며 "관세 부담을 본사가 떠안든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든 수익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FTA의 핵심은 생산지 차별 금지인데 이번 조치로 원칙이 무력화됐고, 미국 수입차 시장 전체 흐름을 고려하면 현대차의 점유율이 위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관세는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부품사들의 수출 경쟁력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자국 부품사와의 협업을 확대할 경우, 국내 부품업계 전반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조선업계는 이번 협상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대표 산업으로 부상했다. 정부는 관세 합의 발표 직후 "한국과 미국이 조선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전용 펀드 조성 계획을 밝혔다. 이 펀드는 선박 건조뿐 아니라 유지·보수(MRO), 기자재 공급, 인력 교류 등 조선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투자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 측은 미국의 군함·상업용 선박 생산 기반이 약화된 상황을 겨냥해 국내 조선사들의 고도화된 설계 역량과 친환경 선박 기술을 적극 부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설계·시스템 분야에 강점을 지닌 국내 조선사들과 자율운항·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한 미국 기업 간 협력을 통해 미래형 선박 산업에서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업계에 대한 기대감은 증시에도 즉각 반영됐다. 최근 1주일간 한화오션 주가는 약 19%, HD현대중공업은 13% 상승했으며, 관련 ETF도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한화오션의 목표주가를 최대 14만3000원까지 상향 조정하며 조선업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에서 조선업이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닌 전략적 협력 산업으로 격상된 데 의미가 있다"며 "단기 호재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성장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hyang@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