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협상 사실상 가이드라인…"대미 투자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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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전용부두에 완성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처럼 큰 금액을 투자하면 다른 나라도 관세율을 인하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등 아직 타결되지 않는 국가에 압박을 주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의 상호관세율을 15%까지 낮춰줬다"라며 "그들이 돈을 내고 낮췄다. 다른 국가도 돈을 내고 인하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22일 상호관세율과 자동차 관세율을 각각 15% 낮추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미국에 농산물과 자동차 등 시장을 일부 개방하고 5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당초 4000억달러를 제안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5500억달러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한국·일본 등 동맹국, 브라질 등 그룹별로 일정 부분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일본과 함께 다음 달 1일부터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받은 한국은 미일 협상 결과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관세 정책 의도가 관세 수입을 통한 미국의 재정 적자 축소인 상황에서, 한국은 투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미 통상 2+2 협상이 돌연 취소되는 등 미국의 한국 압박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투자하는 펀드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삼성·SK·현대자동차·LG·한화 등 기업 총수와 회동한 것도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한국이 1000억달러 이상 투자 계획을 미국 정부에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지난 3월 총 210억달러 투자 계획을 선제적으로 밝혔다. 현지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설립하며 미래 산업 투자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선제적으로 밝힌 투자 계획이 주효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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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결국 민관이 적정한 수준을 만들어낼지가 핵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의 협상력 강화는 필요조건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이 자동차와 농산물 등의 시장을 일부 개방한 것에 대해 큰 타격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일본은 도로 자체가 좁아 경차 위주 자동차 시장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미국과 독일, 한국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일본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일본인 대다수가 일본차를 선호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미국 등에 실질적인 이득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완성차 업체는 미일 협상 결과를 비판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스텔란티스를 대변하는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미국 부품이 없는 일본 수입품에 미국 부품이 많이 들어가고 북미에서 제조된 차량보다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나쁜 합의'라고 평가했다.
국내 주요 수출기업 실적에는 관세 여파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4일 올해 2분기 매출 48조2867억원, 영업이익 3조601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7.3%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5.8% 줄었다.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3% 늘어난 25만6000대를 기록했다. 관세는 올랐지만 가격은 동결한 현대차의 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것에 대한 착시 효과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일본이 15%로 관세율을 낮춘 상황에서 한국도 최소 15%로 낮춰야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영국의 경우 자동차 관세율을 10%로 낮췄지만, 연간 10만대 이내라는 제한이 있다.
한미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민관이 묘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이 가이드라인이 돼버렸다. 우리 농산물을 양보해야 하는 말도 나오는데, 자동차는 12.5%까지는 내려가야 경쟁력이 생긴다"라며 "미국에 투자가 쏠리면 국내 고용이나 지역경제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복잡한 셈법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bell@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