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법안 통과로 스테이블코인 제도권 안착
자본유출·통화정책 훼손 우려 속 국내 논의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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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화하는 '지니어스 법안'에 서명하면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없는 디지털 달러'로 공식화된 가운데 한국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달러 패권의 디지털 굴레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챗GPT 생성 이미지 |
가상자산이 실물자산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새로운 화폐 혁신을 이끌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송금·결제 등 실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달러 패권 강화라는 또 다른 양극화, 국가 통화 주권의 약화, 무분별한 민간 코인 확장, 감독 사각지대 속 금융 리스크 등 새로운 구조적 위기를 동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팩트>는 [스테이블 혁명] 기획을 통해 디지털 화폐로서 스테이블코인이 갖는 잠재력과 한계를 짚고, 국내외 정책당국과 금융업계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화하는 '지니어스 법안'에 서명하면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없는 디지털 달러'로 공식화됐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고통이 큰 신흥국에서는 원클릭 송금에 따른 자본 유출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달러 패권의 디지털 굴레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美 지니어스법 통과, 스테이블 코인…인플레 신흥국 자본 유출 현실화도
지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스테이블코인 혁신·육성법(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GENIUS Act)'에 서명하면서 연방 차원의 첫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가 공식화됐다. 법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반드시 현금·단기 美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100% 준비금을 보유하고, 매월 준비금 내역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지니어스 법안은 상원 통과(6월 16일)에 이어 하원에서도 308대 122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 17일 가결됐다. 재무부·연방준비제도 ·통화감독청(OCC)이 공동 감독권을 행사해 은행·핀테크·가상자산사업자 모두 '지급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발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100억달러 이상의 대형 발행사는 연준 또는 OCC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되며 소규모 발행사는 주정부 규제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지니어스 법안은 달러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을 확고히 하고 실현할 명확한 규제 틀을 만든다"며 "인터넷의 탄생 이후 금융 기술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혁신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연방법 제정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신뢰도가 높아져 2028년 시장 규모가 2조달러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준비자산에 미 국채 비중이 늘어 달러 수요가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으나 홍콩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우회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홍콩의 경우 오는 8월부터 새 암호화폐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러시아 국영 방산기업 로스텍 역시 최근 루블과 가치가 1대 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루브엑스'(RUBx)와 '알티-페이'(RT-Pay)를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3대 메가뱅크인 미즈호와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등이 엔화코인을 찍을 예정이다.
다만 스테이블 코인이 '디지털 달러'로 진화한 가운데 인플레 신흥국 자본 유출 현실화도 우려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7년 1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집계한 결과, USDT(테더) 교차국 거래의 약 90%가 미국 국경 밖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1584억달러(약 220조원)의 90%, 1425억달러(약 198조원)가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세계 각국에서 유통됐다. 미국 민간기업 테더가 발행한 USDT의 시가총액은 지난 4일 기준 1584억달러에 달한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미국은 지니어스 법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달러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며 "정치적 개입 없이 달러의 영향력을 확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터키·아르헨티나·브라질 등 고(高)인플레이션 신흥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 예금통장'으로 사용된다. 테더 CEO 파올로 아르도이노는 "현지 은행에서 달러 현찰을 구하기 어려운 국가일수록 USDT 수요가 폭발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지난 2월 "국내 암호자산 흐름의 90%가 스테이블코인과 연관돼 자본 흐름 변동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원클릭' 해외송금으로 국부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금융망을 통할 때 수일이 걸리던 해외송금이 블록체인에서는 수초 만에 완료된다. 송금 수수료가 낮은 동시에 거래 추적이 어렵다는 점이 투기성 자금 이동뿐 아니라 합법적이지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교역?투자 자금 통로로 쓰이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화 대체 수단을 제공해 일국의 통화정책 전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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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선 달러 패권이 규제 '공식 백업'을 얻은 셈이어서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외환·통화정책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팩트 DB |
◆ '디지털 원화 방패' 시급…국내 스테이블코인 논의 지지부진 속 법·제도 설계 과제
국내 전문가들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조성해 '디지털 결제·송금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통화주권이 종속될 것"이라며 제도화를 촉구했다.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소매용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파일럿은 법정통화 신뢰를 전제로 하나 민간 주도 혁신 속도와 범용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유출, 통화정책 약화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자산은 이제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거시경제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정책적 대응의 속도와 정밀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달러 패권이 규제 '공식 백업'을 얻은 셈이어서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외환·통화정책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스테이블코인이나 가상자산 ETF 관련 제도 논의는 초기 단계에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만큼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산하에 설치된 스테이블코인 소분과에서 관련 내용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은행·전자금융업자·가상자산사업자 등 다양한 발행 주체 허용 △준비자산 100% 예치 및 실시간 공시 △외환거래법·자본시장법 등 현행 규제와의 정합성 확보를 핵심 과제로 꼽는다. 일본·EU 사례처럼 '전자화폐' 규제 틀을 준용해 1:1 환급을 법적으로 보장하면 소비자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USDT 발행사는 준비자산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로 운용, 달러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반면 한국 등 비(非)기축통화국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국채 수요·외환보유고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리 잡지 못하면 대외 충격 시 자금유출이 가속화돼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량이 늘어날 경우 자금세탁·외환건전성 측면에서 보완책과 관련해 "자금세탁방지(AML) 측면에서는 해외 거래소와의 트래블룰 연동을 확대하고, 개인지갑 등 추적이 어려운 영역으로 자금이 이동할 때 더 엄격하게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또한 고객의 고액 환전 요청 시 거래소가 해당 자금의 출처에 대한 증빙을 요구하는 고객확인의무(CDD/EDD) 절차 강화와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외환거래 보고 의무등을 강화해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도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출시에 따른 기술·규제 과제와 관련해선 "우선 규제적으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의 명확한 기준과 자격 마련이 필요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이용자가 완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의무화 되어야 한다"며 "그 외 한국은행이 우려하고 있는, 통화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는 은행 등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100%이상의 준비금을 예치하고, 실시간 준비금 증명(PoR)을 통해 실시간 증명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해킹 등의 위험이 없도록 시스템을 고도화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