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쓰는 돈이 사람을 향하면 좋겠습니다 [김원장의 경제학전] |
| 지난해 서울 성동구 1기 시니어 모델 양성교육 과정을 수료한 전재희(66, 오른쪽)·박은숙(64, 왼쪽) 씨가 런웨이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동구 |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진짜 푹푹 찝니다. 서울의 몇몇 구청들은 가난한 어르신들을 지역 호텔에서 며칠 밤 쉴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 냉방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어르신이 대상이에요.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됩니다. 이 더위에 쪽방에서 지내다 깨끗한 숙소에서 며칠이라도 더위를 피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괜히 흐뭇해집니다. 콘크리트로 뭘 짓는 것 보다, 예산을 이렇게 사람에게 더 쓰면 좋겠습니다. 건물이나 도로 이제 충분합니다.
용산구청에는 평생교육 과정 중에 하나로 ‘시니어 어르신들 모델과정’이 있더군요. 물론 무료입니다. 지난해에는 졸업 패션쇼도 했어요. 패션쇼 이름이 ‘화양연화’입니다. 이런 게 선진국일거예요. 한 나라의 수준은 국민들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로 가늠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이런 데 재정을 잘 쓰지 않습니다. 주로 뭘 짓는 데 쓰죠. 우리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 부강한 나라를 만든 이유는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섭니다. 계속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부가 한 해 쓰는 700조 원이 넘는 재정 대부분이 ‘과거에 해왔으니 올해도 집행하는’ 예산입니다. 도로를 건설하고 지하철을 건설하고 지방에 거대한 경기장을 건설하고. 실적이 눈에 보이는 사업을 좋아합니다. 국회의원과 군수님이 참석해 "아 참으로 잘 지어졌구나" 하는 사업을 좋아합니다. 저희 동네는 최근에 비탈길 아스팔트 도로 아래 발열장치를 설치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재정사업, 특히 주민의 즐거움이나 배움, 행복을 위한 사업은 잘 안합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 아이와 영화를 보는 대학생에게 영화 티켓과 함께 5만 원을 지원하는 정책 사업이 있다고 하죠. 아마 "영화보고 노는 데 나랏돈을 쓴다고?"라고 할 겁니다.
어느 군청은 철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가을에 볏짚을 그대로 두면 면적에 따라 농가에 예산을 지원한데요. 곡식을 축내는 ‘나쁜 새’들을 쫓아내는 나라에서, 철새를 위해 곡식을 널어두는 나라가 됐어요. 재정 집행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 주변에 보면 체대나, 미대, 음대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요. 중위소득 하위 30% 가구나 직장 생활을 하는 편부모 가구의 아이들에게 스포츠나 미술 음악을 가르치는 과외비를 정부가 지원하면 어떨까요.
미국에 살아 보면 ‘여기가 왜 선진국이지?’ 의문이 들어요. 엉터리 행정에, 거리는 불안하고, 의료시스템은 엉망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동네 아이들이 야간 조명을 켜고 야구를 하죠. 헬맷이나 글로브는 무슨 케첩 회사가 지원했더군요. 공공 수영장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뉴저지의 한 주립공원에는 산 정상 호수에 모래사장을 만들어놨어요. 산 정상까지 모래를 퍼다가 모래사장을 만든 거예요. 아이들은 수영을 즐기고, 청년들은 월마트에서 산 카누를 타고 휴일을 보냅니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취재하다 바닷가에 갔는데 해변에 가스레인지 화구가 설치돼 있더군요. 단추만 누르면 가스불이 켜졌습니다. 고기만 사가면 누구나 바비큐로 구워 먹을 수 있어요. 우리는 바닷가까지 도로는 너무 잘 건설돼 있는데, 정작 제대로 된 공공 탈의실이나 샤워장 하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아난티 코브로 가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해변이 얼마나 더운지 경험하고 돌아옵니다. 이런데 재정을 쓰자고 하면 ‘바닷가 놀러 간 사람들에게 왜 세금을 쓰는가’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렇게 집행된 돈이 시장으로 또 흘러 들어가겠지요. 국민이 즐기고 쉬고 행복해지면 그것이 곧 성장률을 올립니다. 다만 잘 보이지 않고 잘 측정되지 않을 뿐.
눈에 보이는 재정사업은 지어놓으면 좋지만, 관리 예산이 계속 들어갑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뭔가를 계속 지을 수는 없습니다. 대전 지하철은 적자만 7천억 원이 쌓였습니다. 이런 사업은 이미 사람과 자본이 넉넉한 곳에 또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성이 높을수록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강남구에만 지하철역이 35개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 기능적 재정 집행에 경도된 공적 이데아를 깨야 합니다.
서울시가 임산부나 다자녀 가정에 6번의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무료로 지급하더군요. 대상은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입니다. 이런 사업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소득이 생긴 가사도우미 할머니는 그 돈을 또 어딘가에 소비할 것입니다. 그렇게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됩니다. 사람에게 직접 지급하는 정부의 소비성 지출이 생산 유발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어느 시는 또 거대한 복합 신청사를 짓는다고 하고, 어느 군은 또 국도변에 화려한 폭포 시설물을 설치하나 봅니다. 이런 거는 중국이나 베트남이 참 잘합니다. 이런 거 아무리 지어도 청년들의 눈에는 그냥 ‘헬조선’이에요. 우리도 이제 선진국형 재정 집행을 하면 어떨까요. 나랏돈 쓰는 사업이 더 사람을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생각처럼 낭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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