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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명: 네이키드 런치
🗓 날짜: 2025년 6월 25일 (수)
🕢 러닝타임: 오후 7시 40분 ~ 오후 9시 45분 (115분)
📌 장소: 압구정 CGV
🌟🌟🌟 (3/5점)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기억의 고통을 기괴한 환상과 파편화된 현실을 통해 정직하게 마주하게 만드는 감정의 해부도”
🎥 작가라는 괴물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
<네이키드 런치>는 2025년에 최초로 국내에 개봉한 작품으로, 1991년 <네이키드 런치>의 원작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로 재해석되었다. 원작 소설을 쓴 '윌리엄 S. 버로스'의 삶과 그의 문제적 성정체성, 마약 중독, 문학적 실험성은 이번 영화에서 보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으로 구현된다. 단순히 기이하고 난해한 환상들이 나열되는 게 아니라, 환상과 현실이 서로를 침범하고 흡수하며 주인공 '윌리엄 리'의 심리적 붕괴와 작가로서의 탄생을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다.
📚 <퀴어>와의 연결: 감추어진 것을 쓰는 방식
이 영화는 <퀴어>와 깊이 맞닿아 있다. <퀴어>는 같은 작가 '윌리엄 S. 버로스'가 쓴 또 다른 자전적 소설로, 그가 느꼈던 동성애적 욕망, 자기혐오, 사랑에 대한 불가능한 갈망이 드러난다. 두 작품 모두에서 핵심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쓰기 위한 시도”이다. <퀴어>는 현실적이며 내면적 고통에 집중하는 반면, <네이키드 런치>는 그 고통을 형상화하고 외화시킨다. 곤충, 기괴한 타자기, 의문의 작전과 임무, 살해된 아내, 도망치는 작가… 이 모든 상징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하는 방식이다.
<네이키드 런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건 보고서다”라는 문장은 단지 문학적 형식에 대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윌리엄 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자,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문장이다. 마치 <퀴어>의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려 애쓰는 것처럼, 여기서도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 거대한 벌레와의 대화 – 마음속 목소리의 실체화
'윌리엄 리'가 벌레처럼 생긴 생명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하고 난해한 장면 중 하나다. 이 벌레는 책상 위에 앉아 '임무'를 지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한다. 얼핏 보면 마약 중독에 빠진 주인공의 환각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 벌레는 바로 '윌리엄 리' 자신 속에 있는 통제의 목소리, 억압된 감정, 그리고 아직 자신이 정리하지 못한 불안한 진심을 상징한다. 벌레의 외형은 역겹고 기괴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내용은 오히려 너무 논리적이고 분명하다. 이는 주인공이 자신도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나 욕망을 기괴한 모습으로 밀어내고, 그걸 외부의 '지시'인 것처럼 꾸며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벌레가 내리는 ‘명령’은 실은 주인공 자신이 깊이 원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충동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적 욕망, 살인 충동, 작가로서의 자의식 같은 것들이다.
벌레는 윌리엄에게 “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고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현실과 감정을 문학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자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외부의 명령처럼 받아들여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벌레는 문학적 자아를 억지로 꺼내는 도구이자, 동시에 현실을 피해 가는 방어기제로 기능한다.
🔫 아내 ‘조앤’을 쏘는 장면 – 고의일까, 실수일까, 무의식일까
'윌리엄 리'는 자신의 아내 '조앤'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윌리엄 텔 게임’을 하자고 한다. 이 장면에서 '조앤'은 머리에 잔을 얹고 웃으며 기다리고, '윌리엄'은 총을 쏘지만 잔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를 맞춘다. 그녀는 즉사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며, 이후의 모든 전개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 된다.
이 장면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우발적인 사고인지, 감정적 분노인지, 혹은 환상 속에서 벌어진 일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호함은 의도적인 것이다. 이 살인은 단순히 '이야기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의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핵심적인 상처다. 그는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그 기억은 여러 형태로 환상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예를 들어, 이후 등장하는 또 다른 여성 캐릭터가 '조앤'과 닮아 있거나, 또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격 사건은 주인공의 정체성을 완전히 흔든다. 이 비극 이후 그는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하고, 그 타자기는 곧 또 다른 기괴한 생명체가 되어버린다. 즉, '죽음'은 작가로서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인간으로서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작가라는 새로운 존재가 들어선다. 이 지점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무너지고, 관객은 '사실'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감정의 잔해가 어떻게 다시 조립되는지를 보게 된다.
⌨ 기괴한 타자기 – 창작과 육체의 뒤얽힘
영화 속 타자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처음에는 타자기처럼 보이지만, 점점 살아 움직이고, 심지어 생식기처럼 생긴 기관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처럼 말을 하고, 때로는 벌레처럼 변형된다. 타자기가 바뀔 때마다 모양도 달라지고, 음성도 달라진다.
이 장면들은 마약 환각의 시각적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글쓰기'라는 행위와 '육체적 감정'의 결합을 보여준다. 윌리엄은 감정을 글로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그 감정은 추상적이거나 고상한 게 아니다. 그것은 원초적인 욕망, 혐오, 죄책감, 충동이다. 그 모든 것들이 타자기라는 ‘기계’에 육체처럼 붙어서 윌리엄과 합체된다. 글을 쓸 때마다 그의 몸과 기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타자기가 신체처럼 변하는 이유는, 주인공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그는 쓸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듯 내뱉고, 그 토사물 같은 문장들이 기계 안에서 다시 구조화된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고 낯설며, 어떤 순간에는 성적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글을 쓰면서 얼마나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고통을 겪는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 ‘인터존’이라는 공간 – 모든 것이 뒤섞인 무정부적 도시
영화의 중반부 이후, '윌리엄 리'는 ‘인터존’이라는 낯선 도시로 도망치듯 들어간다. 이곳은 북아프리카 도시를 닮았고,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뒤섞이며, 규칙도 없고 도덕도 없다. 여기엔 실존하는 인물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상한 작전이 지시되며, 마약과 성이 얽히고, 또 다른 ‘조앤’이 나타난다.
이 공간은 현실과 꿈, 환각과 기억이 모두 섞여 있는 ‘마음의 도시’이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자신이 억누르고 피하고자 했던 것들과 하나하나 다시 조우한다. 다른 여성과의 만남은 아내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동성애적인 인물들과의 접촉은 숨기려 했던 성적 욕망을 다시 끌어낸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쓰는 모든 ‘보고서’는 더 이상 외부 세계에 대한 문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기록이 된다.
‘인터존’은 ‘무질서한 내면’이 형상화된 공간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유로워진다. 그는 질서 있는 현실로는 돌아갈 수 없고, 오히려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이 도시는 ‘내면의 혼란’이 외부 세계로 확장된 공간이다. 인터존을 탈출하는 장면은 곧 현실로 돌아가는 장면이 아니라, 감정을 다 쓰고 비워낸 자가 마침내 다시 ‘고통을 안고 사는 법’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 윌리엄 S. 버로스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윌리엄 S. 버로스'는 미국 비트 세대의 가장 특이하고 강렬한 인물이다. 잭 케루악이나 앨런 긴즈버그와는 다른 결의 시인으로, 그는 언제나 ‘경계 밖’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삶은 마약, 동성애, 유럽과 모로코를 전전하는 유랑, 살인이라는 트라우마, 끊임없는 언어 실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를 파괴하고, 조각난 장면과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네이키드 런치>는 그런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상징적인 작업이다. 그는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고의적으로 이야기의 순서를 제거했고, 대신 파편화된 장면 속에 자신의 삶과 악몽을 심어 넣었다. 문학을 통해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병의 상태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려 했다. 그의 글은 치유보다는 생존의 기록이며, 고백보다는 증언이다.
🎭 불편함을 통해 도달하는 감정의 진실
<네이키드 런치>는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건이 명확하게 전개되지 않고, 비유가 넘치며, 감정 역시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혼란은 영화의 실패가 아니라,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의 질서’이기도 하다. 중독, 트라우마, 성적 혼란, 작가로서의 불안감은 어느 하나도 선형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모두 얽히고설켜 있으며, <네이키드 런치>는 그 얽힘 자체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불편하고, 기괴하며, 때로는 무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나면, 관객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하나의 “고통의 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윌리엄 리’ 혹은 ‘윌리엄 S. 버로스’가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기록하고자 했던 그 내부의 구조이다.
🌈 끝나지 않는 고통에서 시작되는 문학
<네이키드 런치>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욕망을 어떻게든 바깥으로 끄집어내려는 몸부림,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비극과 연결되고, 때로는 환상으로 분출되며, 결국 타자기 앞에서 조용히 가라앉는 과정까지. 그 모든 흐름이 낯설고 불쾌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퀴어>가 감정의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려 했다면, <네이키드 런치>는 그 진실을 우회하고 왜곡하며 우연히, 그리고 반드시 도달한다. 그러니 이 영화는 단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며, 모든 진심이 불편하게 시작된다는 보편적 감정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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