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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은 언어의 한계를 단호하게 지적하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감정이나 관념, 존재의 문제들은 종종 명확한 문장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 슬픔, 정의, 죽음 같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말하려 합니다. 이때 언어는 필연적으로 모순에 봉착합니다. 말할 수 없기에 침묵해야 하는 동시에,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죠.
이 모순을 언어의 근원적인 폭력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언어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순간 그것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필연적으로 단순화해 버립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을 '이기적이다' 혹은 '순수하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수많은 결과 맥락을 단일한 틀에 가둬버리는 셈입니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왜곡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지워버립니다.
문학이 이러한 언어의 폭력성을 마주하는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소설은 기존의 명제를 전복하며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 한계를 넘어서려 시도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은 하나의 명제처럼 읽힙니다. 이는 작가와 독자가 처음으로 맺는 약속이자 서사가 출발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그 명제는 온전한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언어는 진짜 심상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빈약한 도구니까요. 그래서 소설은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 그 명제를 의심하고, 흔들고, 결국에는 부수어 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무심하고 건조한 이 문장은 주인공 뫼르소의 세계 인식을 담은 일차적인 진술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 무감정함은 도덕과 감정을 강요하는 사회와 충돌하며 반철학적인 성찰로 이어집니다. 첫 문장의 의미가 마지막에 가서 전혀 다른 빛깔로 재구성된 셈입니다. 제임스 조이스나 톨킨처럼 소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려는 시도들도 이와 같은 - 언어의 근원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이와 달리, 시는 언어의 폭력성을 수용한 채 그 가능성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장르입니다. 시는 감정을 설명하거나 관념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대신 감각과 이미지, 여백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감지하게 만듭니다.
당신에게 아주 귀한 시계가 있다고 칩시다. 당신은 이 시계를 중고나라에 팔아야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귀한 시계라고 적는 것만으로는 시계의 가치를 온전히 전할 수 없을 게 뻔합니다. 시인이 하는 일은 시계의 무게, 손목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리고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의 정적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로서 하여금 그 진가를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여기에서 시계는 곧 관념이며, 그 관념을 직접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에 이르게 하는 게 시입니다.
요컨대, 소설은 언어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의 폭력성을 전복하며 서사를 구성하는 장르이고, 시는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감각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붙드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는 이 고집스러운 시도가, 문학의 가장 절박하고 아름다운 불가능성일지도 모릅니다. | 
미학 토막 상식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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